더 많은 민주주의 - 지향해야 할 바


개인적인 희망이 많이 섞여 있을 수 있다.

일종의 [회고와 전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 불법에 대한 불안>>

어제 그제 광우병 촛불 문화제가 가두 시위로까지 발전하였다.   아니라 다를까 세상의 반응은 정확하게 세 갈래로 갈린다. (그 수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갈래이다.)

불순한 배후 세력 운운하는 것들이 첫 째이다.   언급할 가치도 없으므로 그냥 건너 뛴다.   (니그들은 타도이 대상이 되었으면 되었지 같이 논쟁할 상대들이 아니다.)

둘째로 나타나는 반응이 순수한 촛불 문화제가 일부 무개념한 내지는 급진적인(?) 사람들에 변질되어가는 것 같으니... 일정한 범도를 넘으면 자신은 더 이상 참여하지 않거나 관심을 보이지 않겠다고 훈수 두는 사람들이다.

세째는 내가 보기에 약간 조급해 보이는 사람들 같은데... 시민들의 자발성도 좋지만 .... (시민들이 경찰들에게) 억울하게 당하는 것이 원통하니 <지도부>를 꾸려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두 번째 경우부터 이야기해보자.
이런 이야기는 역사 속에서 언제나 있어 왔다.
419 때도 그랬고, 80년 봄에도 그랬다.    80년 5월 광주에서도 그랬다.
그러나 실제로 역사의 진전은 교문을 박차고 나왔던 사람들에 의해서 좀 더 넓게 포착되었으며, 무자비한 총검과 곤봉에 맞서 무기를 들었던 사람들에 의해 [광주 공동체]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두 번째와 같은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순수한 사람들의 본질적인 욕망이 어떤 구조를 가지고 있는지 그 메카니즘을 이해 못하고 단선적으로 파악하는 경우일 것이다. (그냥 심정으로만 이해하고, 느끼고, 동참할 뿐이다.)    고마운 사람들이기는 하지만 아마도 스스로 잘 삐쳐서 신경질을 낼 가능성이 높다.

지금 상황은 단순한 광우병 문제가 아니다.    본질적인 욕망은 양극화의 촉발과 양극화의 심화에 기인한다.
무언가 불편하고 심란하고 어렵지만, 어떻게 말로나 행동으로나 저항할, 의사 표시할 방법이 별로 없었는데... 소고기 문제 때문에 바깥으로 표현되었을 뿐이다.
저 화려하고 완벽무결하게 보이는 신자유주의에 대해, 두 눈 뻔히 뜨고 당하고만 있었는데... 어떻게 그 틈새를 본 것이다.

따라서 이 문제에 얽혀 있는 사람들의 심정을, 그들의 억울하고 미칠 것 같은, 답답한 상황을 남산 샌님처럼 촛불 문화제로 가두려 하지마라.    이 공은 지금 어디로 튈지 모른다고 보는 것이 정답이다. (어떤 경우에는 그냥 땅 바닥에 하루 이틀 사이에 주저 앉을 수도 있다. ㅠ..ㅠ )


세 째 갈래의 사람들 같은 경우는 과거의 경험에 근거한 조급함일 뿐이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이 번의 광우병 문제는 길거리 시위 한 번 쌈빡하게 잘 한다고 정리될 사안이 아니다. (또 한 동시에 뒤에서 이야기 할 주체 역량하고도 관계 있는 문제이다.)    그러니 길거리 현장에서 [지도부]에 대해 고민하지 말고, 싸움의 전술에 대해 더 많은 창조적인 발상이 필요할 때이다.

정치의 최고 형태가 분명 길거리 정치인 것은 동서 고금을 막론한 진실이다.     이 길거리 정치를 어떻게 다양하게 잘 할 수 있을 것인가의 전술이 필요한 것이다.

쌈박질에 대한 전술로만 한정 했을 때, 지금은 바리케이트가 필요하지 않을 때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오로지 길거리 점령만이다.    여기에서 어떻게 광장을 만들 것인가가 핵심이다.
경찰이 바리케이트를 치면?    우리는 해산한다.    그리고 이동한다.   다시 광장을 만든다.
경찰의 바리케이트를 핫바지 저고리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소규모여도 된다.    길거리를 막고 광장을 만들어야 한다.

불법 운운에 가슴 조이지 마시라.    그것이 불법이 될지, 비수가 될지, 훈장이 될지 지금은 아무도 모른다.




<< 요구에 대한 전망 >>

이런 질문이 가능할 것이다. (성급할지 모르지만 말은 해보자. ^^; )

- 이명박을 사퇴시킬 것인가, 하야 시킬 것인가, 탄핵시킬 것인가, 퇴진시킬 것인가, 타도할 것인가?

부가적인 질문으로 이러한 것들이 가능할 수 있다.

- 대통령 임기가 3개월 밖에 안 지났는데.... 앞으로 4년 하고도 얼마나 더 남았는데... 사람들의 요구는 무엇인가?
(-->위 질문에 덧 붙여보자.     대통령은 꼭 있어야 하는가? )

- 6.10 항쟁의 대중 요구는 "직선제 개헌"이 중심이었다.    즉, 제도의 개선에 관한 것이다.    지금 사람들의 요구는 무엇인가?
(--> 역시 위 질문에 덧 붙여보자.    일반 서민들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이 세상에 믿을 놈 있는가?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해주고 도와줄 사람이 있는가?    민주당? 민노당? 진보 신당? 전교조? 민주노총?    별로 없을 걸 .....   그런데 연령대별로, 삶의 현장 곳곳에서 당하기는 지대로 당하고 있을 걸 .... 이 무지 막지한 삶의 무게가 자신의 무능력과 존재 때문에 기인한다고.. 자책하면서.)

잠깐만, 개인적인 생각을 뒤로 미루자.



<< 더 많은 민주주의 >>

이 것의 핵심은 [권력의 나눠 가짐]이다.
무슨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라, 작금의 상황을 정당 정치의 실종과 제도 정치의 작동 불능이라고 본다는 것이다.
즉, 투표와 같은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노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필요한 것이 [직접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내가 추정하기에 이 직접 민주주의는 일정 기간 동안 어떤 제도의 형태로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냥 공간으로만 존재할 것 같다.   평상시에는 존재감이 별로 없다가 어떤 일순간 시공간을 장악하는 존재로서 말이다.)

실제로 일반 시민들의 역할과 발언과 책임이 더 커져야하는 것이다.    완전한 개별로서, 개인으로서 이러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시민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결국은 이러한 개인인들도 일정한 시점에서는 집단화 되어야 한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이러한 주체 역량을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이다.   (이러한 형성 기간이 얼마나 걸릴지 어떤 시점에서, 어떤 계기로 만들어질지는 알 수가 없지만...  매 번 생기는 모든 과정에서 항상 고민하면서 내 딛어야 할 발걸음일 것이다.)


자, 그렇다면 ?
앞으로 5개월 혹은 10개월 혹은 3년 안에 대통령이 사라진다고... 세상이, 지구가 망하는 것 아니니 걱정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러한 빈 공간을 차지할 직접 민주주의의 역량을 걱정해야 하는 것이지 !!!




<< 나중에 이야기 하고 싶은 사소한 두 가지 >>

- 근대 사회, 혹은 근대 시민 사회 자체가 가지고 있는 경험.

이거 한 시민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무시 못할 내적 역량이며 내공이다.
프랑스 시민 사회가 어디 만만하게 보이던가?    그들도 산전 수전 공중전 겪을 만큼 겪어 봤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도 짧게는 지난 80년대부터, 조금 더 멀리는 60년대부터, 더 멀리는 일제 치하 만주 벌판에서부터 미흡하지만 조금씩이라도 밀고 나온 그 어떤 지향점과 힘이 있다.

이거 우습게 볼 수 없는 사회적 내공이다.    이런 점에서 어제 일요일 새벽의 과격 진압은 실수를 해도 한참을, 번지수를 짚어도 한 참 잘 못 짚은 것이다.


- 노무현에 대한 평가

이명박이 워낙 죽을 쑤니까.. 상대적으로 비교될 뿐이지, 노무현과 그 근친 일당(!)들이 저지른 역사적 패악질에 대해서는 별도로 이야기를 해야 한다.    노빠들은 좀 조용히 자숙하면서 말 조심하고 다닐 필요가 있다.   (좋은 말로 하는 것이니까, 이 오빠의 충고를 깊이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by 곰돌이푸 | 2008/05/26 21:13 | 발언하기 - 잡스런 세상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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