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 자동차 노동자들 이겨라 ~~~ !!!


기본적으로 공장을 지키는 자가 이겨야 한다.

(공장을 떠난 넘들이 어디... 다시 일한다고 기어 들어오나, 오기를?   좃만한 시키들... !!!)

일하는 공장도 못 지키고 한 번 떠났으면, 떠난 놈들이 영원히 돌아오지 말아야지...

공장 지키고 계속 일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나가라고 주접을 떨어.. 떨기는...  쥐새끼 같은 놈들이.



쌍용 자동차 평택 공장을 지키고 있는 해고 노동자들의 싸움이 승리로 귀결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직접적이고 물질적으로 도움을 드리지는 못하지만, 이렇게라도 말 한마디 거드는 것으로......



강에서 삽질하는 것의 억만분의 일만 써도... 한 명의 노동자도, 한 명의 노동자에 딸린 한 가족도 죽이지 않고 살릴 수 있겠다.



상하이차와 관련된 이사급 이상의 전 경영진 전부를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수사하라! (구린 냄새가 심하게 나는 부분이 있다.)

현재 법정 관리인들도 갈아 치워라! (이들이 할 줄 아는 경영적 기법은 사람 잘라서 인건비 줄이는 것 밖에 모른다.    그런 경영이라면 나도 하겠다... 쓰발 넘들아.)

공적 자금을 투입하라!

한 명의 노동자도 해고하지 마라! (같은 라인에서 기름 밥 같이 먹은 동료들을 향해서 비수를 들이민 사람들은...  좀 생각을 해보자. ㅠ..ㅠ)




기본적으로 현재의 법정 관리인을 중심으로 한 경영진에게 묻는다.

이 천벌을 받을 넘들아... 회사 경영이 어려워진 것이 어째서 뼈빠지게 일한 노동자들 잘못이냐?

양심이 있으면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을 해봐라.

니네 같이 배운 것 많고, 가진 것 많은 놈들이 잘 못 한 것이지 !!!   그저 라인에서 뼈빠지게 일한 노동자가 뭔 잘못이냐 말이다!

그런데... 이 더러운 놈들아 세상에... 노동자들끼리 싸움을 붙여?   (다른 것은 혹시 용서가 된다해도 요 대목에서는 절대 니그들 용서를 못한다.     세상에 가장 더러운 방법이다.   어찌 인간들끼리 증오를 부추길 수 있단 말인가?)


쌍용 자동차 평택 공장 해고 노동자들의 승리를 기원하면서!

by 곰돌이푸 | 2009/07/01 11:52 | 발언하기 - 잡스런 세상 | 트랙백

20대 개새끼론^^ - 시간의 기억


태그라고 할까, 주제어라고 할까... 상당히 거칠다는 게 첫 느낌이다.



이런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이야기를 한다는 게 좀 뻘쭘하지만.. 그냥 편하게 들 수 있는 예로서 사용한다.


그러니까...  1950년에 전쟁이 일어나서 1953년에 전쟁이 끝났다.  (그것도 그냥 시간대가 아니라 전국이 쑥대밭이 되는.. 혹은 그 이상의 잔임함을 가지고 있는.)

내 주변에는 흔히 말하는 오팔(58)년 개띠(^^) 선배들이 꽤 있다.  (일단 이 사람들이 자신의 탄생과 성장에 관한 시간대를 전쟁과 관련지어서 어떻게 기억할까?)

내가 지금의 초등학교를 다녔던 것은 70년대 초반이다.     전쟁이 끝난 시점과 비교하면 불과(^^) 17년 밖에 안되는 시간대이다.  (그런데 나는 부모들이 기억하는 이야기들만 들었지 내 삶과 전쟁은 아무 상관이 없었다.   다만, 교과서에 나오는 것과 학교의 각종 행사들만 나의 일상과 전쟁과 관련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 보니... 17년이나 20년이나 30년이나 별로 긴 시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억이 난다.   기억이 날 뿐만 아니라, 어떤 경우는 선명하기 조차하여 일자별 복원도 가능하다. ^^;;;



내가 기억하는 세상의 일은 1979년 10월 27일 아침부터이다.    아침에 학교 가려고 하는데 박정희가 총 맞아 죽었단다.

정확하게 30년 된 일인데... 기억이 난다.    그 뉴스가 흘러 나온던 전파상이 있던 주변의 버스 정류장과 느낌들이.

1980년의 5월은 더 선명하다.    나와는 상관 없었을지 모르지만 주변에 관계된 사람들이 많았으니까.    주변에 형, 언니, 오빠, 누나들이 있었다는 뜻. (^^ 뻘쭘, 먼~~ 산)

1987년도의 기억도 많다.    강경대의 장례식 날도 기억이 난다.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 아마도 인간이라고 하는 동물 중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강렬했던 것은 몇 십년이 흐른 것도 바로 엊그제의 것처럼 기억하지 않을까 한다.


70년대 중후반이나 80년대 초반일지라도 전쟁을 겪은 사람들에게는 어제의 일처럼 생생한 것들이 많을 것이다. (혹시라도 북한군에게 드잡이를 당했던 사람이라면... 빨갱이의 "ㅂ"자에도 경기를 일으키지 않을까?)    왜냐하면 불과 25년전이나 30년전의 일 밖에 안되는 것이다.

2009년 현재에 80년이나 87년 등을 기억하는 나처럼 말이다. (그래서 나는 파시즘의 "ㅍ"에도 경기를 일으키려고 한다. ^^ ㅋㅋ )    대략 29년전이거나 23~4년 전의 일이니까.

아마 이런 기억의 편차, 시간에 대한 편차가 현실 정치의 황당무계함과 오버랩 되면서 조금은 덜 투철(?)한 것 같은 젊은이들에게 투영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결론은?

사실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별 것 아니라는 것이다.

문제는 항상 누가 더 이론적 실천적 실력을 갖고 있느냐, 누가 더 새로운 것에 대한 상상력이 더 강력한가, 누가 더 강한 보편성을 획득하는 노력을 기울이느냐 정도일 것이다.

열 받지 마시라. (젊은이들이든, 중늙은이들이든 ^^ )

좀 더 많이 말하고 (그게 광장이든 온라인이든) 좀 더 많이 듣고, 좀 더 읽고, 좀 더 고민하고, 좀 더 움직이는 것이 보다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 서로의 건투를 빌고 응원을 하자!


by 곰돌이푸 | 2009/06/15 17:43 | 발언하기 - 잡스런 세상 | 트랙백

사람 사는 세상에 대하여 - 낚시밥 물기 ^^



노정태라는 분으로부터 시작된 어떤 논쟁(?) - 이런 거에 끼어드는 것 보고... (느낌상) 낚시밥 무는 것이라고 하는 것 같은데 ....   ㅋㅋ 맞나?

그냥 구경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양쪽 모두 다 우끼고 자빠져도 상당히 심각하게 누워 있는 것 같아서리.

그렇게 당하고도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헤매고 있으니 더 당해도 싸다(^^;;;)라는 느낌까지... 괜히 울컥.   흑흑흑.... ㅠ..ㅠ


그냥 쉽게 말하면... 기득권 입장에서 봤을 때 ...  (엄밀하게 이야기하자면 요 "기득권"이라는 것을 상당히 세분화 해야 하겠지만...  그래야 좀 더 엄밀한 이야기들이 가능하겠지만...   그런 것 대충 뭉개고.. 두리 뭉실하게 말 했을 때 !)

노빠들이나 좌파라고 주장하는 일군의 집단과 쪽수와 역량과 능력과 상상력은 ....  한 줌도 안되는 것들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한 줌도 안되는 것들이 ...  역사의 수레 바퀴를 항상 사람 사는 세상 쪽으로 밀고 왔다는 것 또한 사실!!!)

그래서 한 줌도 안되는 것들이... 도토리 키재기 하고 있으니.. 우끼고 자빠진 것이지.    닝기리.

그럼 여기서 하고 싶은 말이 "대동단결",   오~~ 노 !!!     이거야 말로 진짜로 우끼고 자빠진 것이지.    그리고 이미 어떤 야부리 잘 푸는 아그들이 이미 몇 십년 전부터 써 먹었던 방법인데...  결과적으로는 ?    야부리 푸는 놈들에게만 유리한 것으로 결론났었음.

그럼, 하고 싶은 말이 뭬야?

서로 차별을 인정하고 분리될 수 있는 지점을 미리 미리 밝히고, 공유하고, 받아 들이는 것이지.

내가 봤을 때는 이래 ......  예를 들면 이런 것이지.


정리해고 위협에 처해 있는 평택 노동자들이 도장 공장을 점거하고 요새화하고 버티고 있을 때..  그들에 대해 어떤 입장과 태도와관점을 가질 것이냐?

시민 대회를 하는데... 모이는 장소를 서울 시청 앞 서울 광장이 아니라 광화문 사거리로 잡고 효자동이나 삼청동 방면으로 행진한다고 했을 때, 돌파하는 물리적(? ^^) 노력들에 대해 어떤 태도와 입장과 태도와 관점을 가질 것인가?
(그런데 진짜로 서울에 시청 앞에 있는 광장 빼고는...  사람 모일 데가 그렇게 없소?)

화물 연대 운수 노동자들이 (예를 들어서...)  전국의 고속 도로와 항만을 한 달 정도 멈췄다고 해보자.   그래서...  생필품 가격은 순간적으로 올라가고.. 수출이 되니 안되니 하면서 언론에서는 부르스를 땡기고... 그래서 경제가 망하느니 하면서 빵이 있어야 나눠먹을 것 아니냐라고 염병을 때릴 때, 과연...  그러한 지점에서도 누구를 옹호할 것인가의 문제 등이 그러한 지점이 될 것이다.


아마.. 서로가 갈라지면 (그게 논쟁이 되었든 행동이 되었든.) 이런 지점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  ㅠ..ㅠ


이런 것들을 미리 밝히고... 협력할 것 있으면 하고, 못 할 것 같으면 선 긋고 그러면 되는 것이지...

불쌍하게 죽은 노무현 아저씨 불러내봐야 아무 소용 없다는 것이죠.

(똑똑하고 영리하고 능력있고, 기획력 있고, 상상력 있으면... 그런 능력 있는 쪽에서 더 밀고 가는 것이고...  뭐, 능력 없으면.. 깨깽하고 자빠져 있으면 되고...  ^^ )

그러니까...  민주 대 반민주 구도로 몰고 가봐야... 득 보는 놈은 항상 딴 놈이었던 것 같고... (엄증하게 논증하자면 말 길어지니 대충 패스~~ )

중요한 것은 현실에서 먹고 사는 문제의 조건들에 관한 구도를 명확하게 하는 게 낫다는 거지.  (예를 들면, 어떤 놈은 구조조정 한다고 국가 세금 받아다 삥쳐 먹고, 어떤 놈은 그 공장에서 조질나게 일 하다가 정리해고 당하고.    어떤 놈은 물건 배달 하면서 계단이고 엘리베이터이고 가리지 않고 뛰어 다니고, 어떤 놈은 시급 몇 십원 이야기 하다가 짤리고.    어떤 놈은 내 집, 내 가게 지킨다고 있다가 불에 타 죽고, 어떤 놈은 거기다 몇 억 박아 놓고 뻥튀기 할 꿈에 부풀어 있고.)


사람 사는 세상이 뭐요?

그 것부터 이야기 해보면, 지금 당장 같이 할 수 있는 일들하고... 일정 시점에는 같이 못할 지점들이 구별이 되지.

그러면 거기에 맞춰서 할 일 좀 사이 좋게 하고, 헤어질 때.. 인상 쓰지 않고, 서로 욕하지 않고, 방법이 다른 것 같으니, 서로 더 노력해보자... 이렇게 헤어지면 되지.


뭐.. 염병할 잘나면 얼마나 잘 났다고... 지랄들이여, 지랄이.  ^^  ㅎㅎㅎ...

한 줌도 안되는 것들이.   (여기서 돌 던지기 없기!!!   나도 그 한 줌 안에 있으니까. )


by 곰돌이푸 | 2009/06/08 16:51 | 발언하기 - 잡스런 세상 | 트랙백

남한의 부르쥬아들이 만만한가?


노무현이 죽었다고 해서 ...

오백만이 조문을 했다고 해서 ...

민주당이 mb의 사과 없이는 6월 국회 열 수 없다고 핏대 세운다고 ...

대학교 교수들 수백, 수천명이 시국 선언 발표한다고 해서 ...


그래서 ...


인터넷에 수백만, 수천만의 애도글이 떠돈다고 해서 ...

3년 반 뒤에는 반드시 꼭 투표한다고 해서 ...


그래서 ...


남한의 부르쥬아들이 부들부들 떨면서 앞 날을 어떻게 헤쳐나갈까 두려움에 잡혀 있을 것 같은가?



다시, 광화문에서 시청을 거쳐 남대문을 넘어 서울역까지 촛불이 모인다고 해서 ...

경찰이, 검찰이, 국세청이, 국정원이 눈 하나 깜짝할 것 같은가?

조중동이 아쉬울 것이 있을 것 같은가?


그들은 막아본 적이 있고, 방어에 성공한 적이 있다.

그들의 성채는 짧게 보면 지난 30년간, 조금 더 보면 해방 이후, 조금 더 길게 보면... 일제 식민지부터 이어져 온 굳건한

나름대로의 토대가 있다.




오체투지를 하면서 임진각을 향해 가고 있는 사람들의 몸 짓과 땀 냄새는 30년에서 50년, 어쩌면 100년 후에나 어떤 의미있는 결과가 나올 것이다.

역사와 인간에 대한 겸손한 생각을 갖고 계시는 어떤 고등학교 선생님의 수업 시간에서 학생과 오고간 대화는 5년에서 10년, 어쩌면 길게는 20년 뒤에나 영향이 나타날 것이다.

다음 번에는 반드시 투표하겠다고 맘 먹은 당신의 영향력은 내년 지자체 선거에서부터 조금씩 나타날 것이다.

작년에 촛불 들고, 올 해에 문상을 했던, 그래서 어느 담 벼락이나 인터넷 어느 게시판에 단 한 단어라도 썼던 당신이라면 올 해에 무언가를 보거나 느꼈을 것이다.



자 ... 그래서 ...

제발이다.   

착한 척 하지 말자.

점잔빼지 말자.

저들은 얼마나 악랄하고, 파렴치한가?

저들에게 인간의 피와 눈물과 이성과 감정이 있을 것 같은가?

양보와 겸손이 있을 것 같은가?

저들에게는 오로지 그들의 이익과 권력만이 있을 뿐이다.

저들은 죽음의 일보 직전까지 몰리지 않는 이상 절대 양보하지 않는다.



아직도 장례식을 치루지 못하고 냉동고에 들어가 있는 용산 참사의 시신들을 기억하자.

처자식까지 데리고 들어가 정리해고 반대 투쟁에 참여할 수 밖에 없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있다.

자살한 동료의 영정을 앞에 두고 파업을 준비 중인 화물연대 운수 노동자들이 있음을 기억하자.


만만한 놈들과 싸우는 게 아니다, 절대로.

또 우리가 질 수도 있다.   그것도 아주 처절하게 깨지면서.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 나무란다.


(* 글 하나 링크 겁니다. 대한민국 어디에도 광장은 없다 )


by 곰돌이푸 | 2009/06/05 10:37 | 발언하기 - 잡스런 세상 | 트랙백 | 덧글(1)

북한의 정치 기획자들과 남한의 군인 중에서 높은 분들에게


1. 먼저, 북한에 계시는 분들에게. 

(내가 이런 존칭을 쓰는 것을 무지 영광으로 알아라... 이것들아 !)

어떤 기관이나 어떤 부서나 어떤 인물들인지 내 구체적으로 알 바는 아니나 ....

어찌 되었든 한반도의 남쪽 정세에 대해 깊이 알고 있거나 관여하고 있는 집단이 있을 것 입니다.

당신들이 남한 정치의 변수가 아니라 상수인 것을 인정 합니다.

그러니...  제발 중뿔나게 굴지 말고, 당신들 앞가림부터 좀 확실하게 하면서 나대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물론 당신들 입장에서 PSI 같은 게 아주 황당 무계하겠지요.

그 점도 인정해드리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어떠한 형태의 군사적 긴장도 없기를 기원 합니다.

당신들이 조금만 조심하고, 조금만 길게 본다면...  서로 불행한 미래를 피할 수 있을 것 입니다.

제발 그러한 불행한 일들이 없기를 바랍니다.



2. 남한 군인 중에서 높은 분들에게

(당신들에게 이러는 것은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절대로 절대로 그런 일이 없을 거라고.. 믿지만 !

만의 하나, 만의 하나 혹시라도 모르는 불행한 일이 있을까봐... 미리 노파심으로 말하는 것 입니다.

(이런 것보고 푼수라 하고, 주책이라 할 수도 있을 것 입니다.   차라리 이런 말을 듣는 우스개 상황이라면 더욱 나을 것 입니다.)


당신들의 기본 임무는 주권자들의 안위를 지키는 것 일 겁니다.

북한 얘들의 황당 무계함도 있지만...  어떤 지혜를 빌려서라도 북한과 남한 사이에 어떤 군사적 긴장도 없도록 노력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남한 정치의 한 당사자로 나서는 것은 꿈도 꾸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만약 나서고 싶다면, 옷 벗고 나서시오.)


한반도, 이 땅의 주권자들이 반 MB에 나선다면... 나 같은 중 늙은이야 그저 길거리에서 구경할 수도 있지만 ...

만약에, 만의 하나라도 당신들이 군복 입고, 무기들고 길 거리에 나선다면...

그 때는 서로가 죽음일 뿐이오.   명심하시오.


세 번 다시는 그런 불행한 일이 이 한반도 역사에 다시는 없기를 바랍니다.

이 땅의 역사에서 그런 것은 두 번이었으면 충분 합니다.   너무 충분 합니다.


제발 이런 글이 절대적으로 푼수이거나 주책이기를 바랍니다.





아... 모든 이에게 평화가 항상 함께 하기를.


by 곰돌이푸 | 2009/05/29 17:24 | 발언하기 - 잡스런 세상 | 트랙백

다른 무엇보다도 ....


권양숙 여사에게 깊은 위로를 드립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스트레스가 배우자의 사망이라고 합니다.

너무나 모든 것이 기가 막히게 생겨난 일들이라..

모든 게 꿈만 같고, 실감 나는 게 하나도 없으실텐데 ...

그 모든 허망함을 이겨내시고...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아....  부디 세월이 곱게 곱게 흘러서... 그저 옛날에 그런 일 있었지 하면서..  그냥 가볍게 눈물 한 방울 짓는 ...

그런 순간들이 빨리 오기를 바라겠습니다.


예쁘게 커가는 손녀 보시면서 작은 낙이라도 꼭 붙잡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이 ...  그 어떤 말로 위로가 되겠습니까만은 ....

그래도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by 곰돌이푸 | 2009/05/29 16:42 | 발언하기 - 잡스런 세상 | 트랙백

[펌 - 프레시안] "나는 왜 그의 죽음에 '삐딱할' 수밖에 없는가"


과거를 기억하는 또 다른 현재는 좀 더 새로운 미래를 기약할 수 있을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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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그의 죽음에 '삐딱할' 수밖에 없는가"

[노무현을 기억하며] 노무현 전 대통령 '삐딱하게' 추모하기

기사입력 2009-05-27 오후 6:3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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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이 전해지자마자 전 국민이 애도의 물결에 동참했다. 하지만 전 국민이 주체할 수 없는 슬픔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그의 안타까운 죽음에, 나는 혹은 우리는 왜 삐딱하게 추모할 수밖에 없는지를 말하고 싶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삐딱하게 추모하는 대표 주자는 분향소 주변을 경찰 버스로 통제하면서 '아늑한' 분위기를 조성한 경찰과 '방문객이 적으면 적을수록 안전하게 행사'를 치를 수 있기 때문에 '일반인이 이곳에 분향소가 있다는 사실을 알기 힘든' 곳에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분향소'를 설치한 서울시, 그 외에도 김동길, 변희재, 보수 언론 등 참으로 많다.

그러나 이런 흐름과는 정반대 방향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삐딱하게 추모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시절의 공과나 평가와 상관없이, 그의 죽음을 삐딱하게 추모할 수밖에 없는 '독한 놈들'이 형성된 것은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 그 자신이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서 보인 '삐딱한' 애도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2003년 11월 4일, 한 달 사이에 노동자 네 명이 유명을 달리 하던 바로 그 시기 노무현 정부는 합동 담화를 통해서, "지금과 같이 민주화된 시대에 노동자들의 분신이 목적 달성을 위한 투쟁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되며, 자살로 인해 목적이 달성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대통령의 의중이 실린 메시지를 전했다.

아마도 나를 비롯한 적지 않은 분들이 바로 이 대목에서 '인간에 대한 예의', '망자에 대한 예의'라는 측면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극심한 격차를 느꼈을 것이다. 이랬던 이들은 모두 그의 재임 시절의 공과나 정치적 입장에 상관없이 지금 복잡 미묘한 심경에 처했을 것이다.

2003년 11월의 그는 노동자가 분신자살하고, 고공 농성 중에 자결하고, 먼 타지에서 농민이 자결하는 그 절망감과 절박함에 공감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투신자살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숭고함과 절박함을 인식하지 못하는 일부 보수 세력의 모습에, 2003년 11월의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겹쳐 보이는 것은 단지 내개 '독한 놈'이기 때문일까?

물론 나와 같은 '독한 놈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진심으로 추모하면 안 된다던가, 명복을 빌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단지 우리의 '삐딱한' 추모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숭고함, 절박함 외에 사회적 억압으로 '죽음'을 택하는 모든 이들의 숭고함, 절박함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 기간에 고 박종태 열사를 추모하는 것은 '죽창 시위'이고, '밥그릇 챙기기'일 뿐이라는 생각은 2003년 11월에 고인이 범한 실수를 되풀이 하는 것이다. 사실 요즘 추모해야할 안타까운 '죽음'이 너무 많다. 대표적으로 알려진 고 박종태 열사와 용산 참사로 돌아가신 철거민 5명 외에도, 성적 비관 등으로 자살한 청소년들이 적지 않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삐딱하게' 추모하는 것은 장례도 끝나기 전에 그의 공과를 평가해야 한다거나, 그가 예전에 다른 이의 '숭고함'과 '절박함'에 공감하지 못했으므로, 우리도 똑같이 되갚아주자는 것은 아니다. 단지, '망자에 대한 예의'에 대해선 차별이 없어야 한다는 것, 전직 대통령 외에도 노동자, 철거민, 청소년도 같이 추모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꿈꾸던 '사람 사는 세상'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전직 최고 지도자도, 일개 시민도 같이 추모를 받을 수 있다면 그의 '이상'에 좀 더 가까워진 사회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나와 같은 '독한 놈들'은 복잡 미묘한 심경을 숨기며 침묵만 지키고 있어서는 안 된다. 다른 많은 국민들처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향소나 추모 행사도 참여하면서, 우리의 '삐딱한' 추모를 같이 해야 한다. 비록 추모의 대상이나 방식은 다를지라도, 그들의 죽음에 책임을 물어야 할 대상은 동일하지 않은가?

by 곰돌이푸 | 2009/05/27 20:16 | 발언하기 - 잡스런 세상 | 트랙백

[펌-프레시안] "한편의 '희극'이 '비극'으로 끝나다"


* 고인이 명복을 빌면서 아래 글을 인용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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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의 '희극'이 '비극'으로 끝나다"
[기고] 노무현의 죽음, 용산과 박종태의 죽음

 

     다소 긴 글을 시작합니다. 어느 분들에게는 듣기 싫은 소리일 수도 있겠지요.

누군가가 죽는다는 것은 정말 슬픕니다. 넉 달 전쯤 40년 지기를 먼저 보내고 묘 주변에 잠시 혼자 남아 진정 삶과 죽음이 함께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다 내려왔는데, 노무현 전대통령 또한 이 세상을 등지며 '삶과 죽음이 하나 아닌가!'라는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글을 쓰다가 혹은 길을 걷다가 나이 50이 되기도 전에 몹쓸 병에 걸려 혼자 깊은 밤을 보내며 죽어갔을 친구의 실존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흐릅니다.

설상가상 죽음에 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된 것은 그 즈음에 일어난 용산학살이라는 구조적 폭력 때문이었습니다. 정말 저렇게 불에 타 죽어야할 사람들이 아닌데, 살릴 수 있었던 선량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도 모자라 테러리스트라는 딱지를 붙이고 진실을 밝히라는 사람들을 감옥에 가두고 수배, 연행하고, 조문하겠다는 사람들 길을 가로 막고. 그래서 하도 기가 막혀 이명박 씨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살까라는 부질없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렇기에 덕수궁 앞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모대열을 경찰이 막는다는 뉴스가 흘러나와도 그저 덤덤할 뿐입니다.

그런데 뒤돌아보니 20대의 젊은 시기에도 이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5.18민중항쟁 시기에 죽임을 당한 평범한 시민들의 처참한 주검을 담은 사진들을 처음 접한 후 매일 TV에 나와 아무 일 없다는 듯 '정의구현사회'를 반복하는 전두환 씨를 보며 그랬던 적이 있었습니다. 뒤돌아보면 그 역시 부질없는 짓이었지요. 이 두 사람을 보면 그저 "피는 속일 수 없다."는 말만이 떠오를 뿐입니다. 이런 그들도 과연 삶과 죽음이 하나라고 생각할까요.

그래도 말단에서 정치학을 공부한다고 사람들이 확인 겸 해서 종종 묻습니다. "이명박 정권 등장이후 정치가 실종되었다고 말하는데,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게 이명박 식 정치 아닌가요?" 번득이는 질문에 "그렇지요, '정치'지요. 현실 속의 정치는 하나로 존재하지 않거든요. '하나인 것처럼 보이는 이 사회'는 여럿의 정치가 서로 모순과 긴장, 적대와 갈등 관계를 유지하면서 전체적인 모습을 끊임없이 만들어 가지요. 하나의 정치를 말하는 것은 이데올로기입니다." 이런 '뻔한 대답'을 하면서 이제 이 변변치 않은 지식을 가지고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도 노무현 전 대통령도 괜히 했다고 후회한 정치, 진정 '정치란 무엇입니까?'라는 자문을 하게 되니 이 무슨 조화인가요.

잠시 과거를 더듬어 봅니다. 전두환 정권은 정규군을 투입하여 5.18민중항쟁을 유혈 진압한 후 불순분자, 폭도들이 소요, 폭동을 일으켜 나라의 운명을 바로잡기 위해 그 죽임이 불가피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안정됐으니 국민여러분은 생업에 전념하라고 했지요. 지금 이명박 정권은 또 어떤가요. 경찰특공대를 투입하여 철거민들을 학살하고 '이제 여기 용산은 더 이상 문제될 것이 없으니 모이지 마세요, 배회하지 마세요.'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아무 일 없다.'면서도 경찰력을 동원하여 거리를 막고 무엇이 두려운지 4호선 신용산 역 바로 옆의, 학살현장 남일당 건물을 철통같이 '경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 80년대의 양식 있는 사람들은 어땠습니까. 처음에 "광주에서 이런저런 일이 있었다는데..."라며 소곤소곤 말했지요. 평온해졌다고 하는데도 그 곳에 시선을 주고 귀를 쫑긋했습니다. 전두환 정권의 총칼이 두려웠지만 '전두환 시리즈', '이순자 시리즈'라는 것을 만들어 그들을 희화하고 조롱하다가 결국 목소리를 모아 마침내 "거기에서 학살이 있었어요~"라고 큰소리로 진실을 말했지요. "파쇼타도"를 외치며 싸웠지요. 지금 용산은 어떤가요. 많은 사람들이 잊었다 하지만 철거민들이 학살된 것을 잘 알기에, 광주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들은 선량한 사람들이기에 양식 있는 사람들은 죽은 자들을 대신하여 그 가족과 함께 억울함을 널리 알리고 거기에서 얼마나 반인륜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고발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있든 그렇지 않든 항상 그 곳을 염려하고 걱정하면서요.

진정 정치란 무엇인가요. 바로 여기에 '그들의 정치'와 '우리의 정치'가 어떻게 다른지, 그 비밀 아닌 비밀이 간직되어 있습니다. 파시스트의 계보를 지닌 그들은 예나 지금이나 장밋빛 꿈만 말하며 매사에 큰 문제가 없다고 말하지요. 그렇기에 그들은 지금 죽어가는 사람,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사람들일수록 더 매몰차게 몰아댑니다. 그렇기에 선량한 사람들을 죽여 놓고도 아무 일 없으니 그냥 관심 끄라는 투의 말을 눈 한번 꿈적 하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자기와 상이한 목소리들은 모두 막아버리고 수색, 압수하여 갖다 버리고 가두어 차단하면 되지요. 이게 '그들의 정치'인데, 그것은 다름 아닌 '공안(치안)'입니다. 그들과 우리 사이에는 화해할 수 없는 넓고 깊은 강이 있습니다. 왜냐구요? 그들은 자신들이 임의로 그어 놓은 경계를 벗어나고자 하는 우리의 목소리와 삶 자체를 애초 인정하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권자라고 말하면서요. 단 한 치의 공간도 내주려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정치'는 무엇인가요. 오히려 "여기에 어그러짐, 차이, 긴장과 갈등이 있어요."라고 밖으로 외치는 것이지요. 80년 새벽 광주에서도 신군부파시스트의 '공식적인 말'과는 달리 "여기 우리 죽어가요. 제발 살려주세요."라고 그 누군가가 소리쳤습니다. 그 한마디에 이후 많은 사람들이 죄책감에 괴로워하면서 젊은 청춘을 보냈습니다. 그것을 생생히 다룬 임철우의 소설 「봄날」을 기억하시죠. 용산에서도 "여기 사람이 있어요. 제발 생존할 수 있는 공간만은 허용해주세요."라고 절규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도 결국 비참하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 외침 때문에 또 많은 이들이 자책하며 잠 못 이루고 눈물을 흘립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아니 알아주기를 원치 않는 이들이야 말로 진정 '이 시대의 바보들'이지요. 바로 여기에 '우리의 정치'가 있습니다. 고통 받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들이 말할 수 있게 하는 것, 그들이 말할 수 있는 시공간을 함께 만드는 것이 '우리의 정치'입니다. 그것이 아무리 작은 공간일 지라도요. 왜냐구요? 말을 못하면 결국 시들어 죽으니까요. 어떻게 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몸을 던진 '부엉이바위' 또한 그런 공간을 상징하는 것 아니던가요. 그렇기에 거기에서는 삶과 죽음이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정치'에 대해 이처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어찌 자본과 부당한 권력이 그 애절한 삶의 목소리들에 관심을 보이겠습니까. 사람의 관계를 비용 대비 생산성, 이윤의 문제로만 치부하는 자본에게 그런 외침은 그저 어느 가을날 무수히 땅에 떨어져 이리저리 구르는 낙엽소리만도 못한 것이겠지요.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말하는 이명박 정권의 귀에 어찌 그 소리가 들리겠습니까. 국가성장동력의 창출이라는 '거대프로젝트'를 방해하는 이음(異音)은 그저 빨리 제거해야 할 '무능한 인간쓰레기들의 소음' 정도로만 취급될 뿐입니다. 이제 왜 그들이 죽어가는 사람,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사람들일수록 더 무시하고 몰아붙이는지 그 이유가 분명해 집니다. 그들은 오직 추가비용으로만 계상되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이래서 그런가요. 요즘 많은 저널리스트들, 학자들이 '살아 있는 권력'과 '죽은 권력'의 관계에 대해 자주 언급합니다. '살아 있는 권력'인 이명박 정권이 '죽은 권력'을 상징하는 노무현 정권을 탄압, 조롱하였고 노무현전대통령은 그 상징적 희생양이라는 평가도 들립니다. 물론 이런 대당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모르는 바 아니지만, 이것은 주권자를 대상화, 수동화시킨다는 점에서 그 이데올로기의 혐의를 벗어날 없습니다. 왜냐구요? 어떤 사회이건 민주주의를 표명하는 한 '살아 있는 권력'은 오직 '자기지배를 실현하고자 하는 주권자'에게만 붙일 수 있는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것이 가능한가요. 그것은 이들 두 정치세력들이, 언론이,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정치를, 민주주의를 대리주의 토대 위에서만 사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 모두가 그저 주권자를 투표하는 기계쯤으로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살아 있는 권력'과 '죽은 권력'이라는 대립구도 속에서 그들을 제어할 수 있는, 살아 있어야 할 주권자의 모습을 볼 수 없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다만 거기에는 '살아 있는 권력'과 '죽은 권력'이라는, 즉 '집권 엘리트'와 '집권하지 못한 엘리트' 사이의 이런저런 파워게임, 음모와 계략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그렇기에 이런 대당 속에 감추어져 있는 진실은 바로 살아 있어야 할 주권자들이 죽어 있다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 주권자가 오히려 위임권력에 지배당하고 있는 '벌거벗은 주권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해줄 뿐입니다.

 


▲ 진정 그를 살리고 싶다면 그에게서 벗어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정치인 노무현', '민주주의자 노무현'을 어떻게 살려야 할까요. ⓒ뉴시스

그렇기에 묻습니다. 지금 '살아 있는 권력', 그리고 지금 '죽은 권력'이나 과거에 '살아 있는 권력'의 지배 속에서 당신은 주권자로서 살아 있었던 적이 있나요. 직설적으로 묻습니다. 과거 노무현 정권은 '살아 있는 권력'이 아니었나요. 여전히 착취, 수탈, 배제, 억압, 차별의 관계 속에서 고통 받는 무수한 대중이 존재하는데, '민주주의의 대강이 완성되었다.'고 말했던 그 노무현 정권은 '살아 있는 권력'이 아니었습니까.

민주주의, 즉 '자기지배의 실현'을 담보해야 할 주권자로 살아 있다는 것은 지금 이 사회의 다양한 관계 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온갖 착취와 수탈, 억압과 배제, 차별의 경계를 넘어 나아가는 크고 작은 실천에 연결되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선거를 통해 자유주의적 민주정권이 한두 번 들어섰다고 해서 그 민주주의가 완성될 수 있나요. 선거가 민주주의인가요. 오직 보수정치(학)만이 그렇게 역설할 뿐입니다.

자본이 지배하는 시장으로 권력이 넘어가 이른바 '삼성공화국'이 존재하는데, 그리하여 그것을 문제 삼은 변호사, 기자, 정치인은 여전히 고통을 받고 있는데, 또한 국가권력이 자신들의 오랜 상표였던 중립성의 언술조차 부정하고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외치며 자본과 직접 거래하겠다고 공공연히 말하는 이 시대에, 그리하여 삶과 죽음을 가로지르는 장벽들은 더욱 높아지고 그 와중에 가난한 이들은 저토록 억울하게 죽어나가고 있는데, 아무리 뼈가 빠지게 일해 생산력을 높여놓아도 빈부격차는 줄어들기는커녕 더욱 심해지는데, 그것들을 문제시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자기지배의 실현'이, 민주주의의 대강이 완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나요. 이런 썩을 대로 썩어 문드러진 구조들, 관계들을 덮어둔 채, 이른바 깃털인 '박연차 리스트'를 들이대며 '살아 있는 권력'과 '죽은 권력'들이 도덕성, 법치 운운하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본말전도 아닌가요. 이것이야말로 정녕 웃기는 한 편의 코미디 아닌가요.

그렇기에 진정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 안타까운 이유는 그의 인식, 의도 여부와 무관하게 그가 이처럼 웃지 않을 수 없는 코미디의 주연임을 자임하며 그것을 비극으로 전환시켰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진정 막후의 검은 손들은 엄숙주의로 가장한 채 지금 이 추모의 순간에도 그의 죽음을 앞세워 '국가경쟁력강화'니 '국민단합'을 외치며 어떻게 하면 대중을 더 착취, 억압할까를 궁리하면서 저렇게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데 말입니다.

그의 재임 시기에 이런 부당한 구조들, 사회관계들이 나아지지 않았는데, 그의 민주주의는 도대체 어떤 것이기에 그 대강이 완성되었다고 말 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이 완성되었다고 말하자마자 그 코미디는 더욱 극단화되었고 그의 민주주의조차 생명력을 잃게 되었으며 바로 그것이 그를 죽음으로 몰아갔다는 그 '살아 있는 권력'의 토대가 되었다고 말한다면 너무 과도한 해석인가요. 하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자연인 노무현이 아니라 사회관계의 결절점으로서의 노무현 정권에 대한 비판자였기에 그 지지자들에게 묻습니다. '정치인 노무현'을 지지했던 이유가 무엇인가요. 과거 그를 지지했던 어느 배우처럼 "사람이 사람 좋아하는데 무슨 이유가 있냐?"고 반문한다면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저 또한 이 시대의 재산과 교양을 지닌 분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노무현의 직설화법을 좋아했지요. 항상 가난을 끼고 살아서 그런지 몰라도 가난한 자들의 고상치 못한 문화, 민중적 부대낌을 여전히 좋아합니다. 문득 정치인 노무현에게서 그런 면모를 볼 때, 그 누구보다도 친근감을 느낀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저런 무책임한 발언을 하며 그 누구를 정치적으로 지지하지는 않습니다. 누군가를 정치적으로 선택한다는 것은 결국 나의 삶과 죽음뿐만 아니라 타자의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를 지지하든 그렇지 않든 조금이라도 정치인 노무현에 시선을 준 적이 있다면 아마도 그것은 그가 민주주의의 진전을 가로막는 그 어떤 경계들을 넘어 나아가고자 하였기 때문 아닌가요. 안 그런가요. 그렇다면 아쉬울 수도 있겠지만 그가 그것을 멈추는 순간, 민주주의의 대강이 완성되었다고 말하는 순간 정치인 노무현을 내팽개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 아닙니까. 민주주의를 좀 더 진전시키라고 탄핵으로부터 구해주고 그 정치세력을 의회의 다수당으로 만들어 준 것이지 '대연정'하라고 그렇게 한 것은 아닙니다. 또 다른 경계들과 대결하는 것을 포기한 순간 이미 '시대의 아이콘으로서의 정치인 노무현'은 죽은 것입니다.

그런데 가당치않게도 그의 반연고주의, 반지역주의, 반특권의 정치적 행보가 좋아 지지한다는 사람들이, 그것도 자칭 지식인이라는 자들이 과거 그와의 인연, 이런저런 회한을 드러내며 추모하는 것을 넘어 그의 죽음을 앞세운 채, 민주주의의 의미를 호도하고 진보세력에게까지 어줍지 않은 '분노의 화살'을 돌리는 언술, 행태가 눈에 보이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요. 그와 같은 행태는 추모라는 이름으로 해서는 안 될, 진정 '인간 노무현'조차 죽이는 일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자들이나 하는 짓입니다. 그것은 최소한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모르는 자들의 맹종일 뿐입니다. 그것은 '정치인 노무현'을, '민주주의자 노무현'을 다시 살리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 그를 살리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이제 그로부터 벗어나라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죽은 자를 추모하는 것은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그 무엇인가를 버리는 의식이기도 합니다. 진정 민주주의자로서의 그의 어떤 모습을 기억하여 그것을 다시 살리고 싶다면, 그를 추모하는 동안 격한 감정을 드러내기보다 진정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이을 것인지 성찰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것이 지성인의 자세입니다.

그런데 '정치인 노무현'을, '민주주의자 노무현'을 살리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요. 그것은 과거에 그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 여기에 가로 놓여 있는 그 어떤 부당한 장벽들, 경계들을 비판하고 그것에 저항하면서 그것을 허물고 새로운 삶의 관계들을 만들어나가는 것을 통해서만 가능해집니다. 민주주의는 과거의 경력을 불러내는 것이 아니라 오직 살아 움직이는 지금 이 순간의 부당한 관계들을 문제시하고 그것을 넘고자 하는 실천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죽은 노무현을 잡고 그를 기억하는 것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지금 살아 고통 받는 용산을, 특수고용노동자들을, 이주노동자들을, 소수자를, 수탈 받는 환경과 생태의 아픔을 안고 함께 싸우는 것이 진정 그를 살리는 유일한 길입니다. 민주주의, 즉 자기지배의 실현은 그 어떤 지도자들에게 자신의 꿈을 투사하여 이룰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아는 자들만이 "이제 저를 버리라."고 한 '대통령 노무현'의 말을 제대로 독해하는 사람이고 그를 넘어섬으로써 그를 살리는 참다운 지지자가 될 것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정치인 노무현'이 꿈꾸었을 그 어떤 세상이 진정 특권을 지닌 세력들이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었다면, 그리하여 "이미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대통령 노무현'의 말이 자신의 개혁을 막고 있던 거대자본과 특권의 힘 앞에서 더 이상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자조와 한탄의 그것이었다면, 그의 꿈은 결코 개혁자유주의자들의 힘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과제라는 것을요. '노무현의 꿈'은 열성지지자들인 당신들이 진정한 민주주의자, 진보주의자로 거듭날 때만 가능해진다는 사실을 정말 잊지 말길 바랄 뿐입니다. 그래서 '바보 노무현'을 추모하는 저 촛불이 지금 그의 죽음을 함께 슬퍼하는 용산의 착한 이들과 가난한 자들의 삶 속으로 자연히 이어질 때만이, 진정 '이 시대의 또 다른 바보들'과 어깨를 할 수 있을 때만이 그 또한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을요. 이제 당신들의 몫입니다.

인간 실존의 문제인 죽음은 모든 이들을 슬픔으로 몰아넣습니다. 그런데 여기 학살당한 지 130일 넘게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냉동고에 보관되어 있는 용산의 가난한 주검들이 있습니다. 호혜적 삶과 관계를 희구하다 결국 스스로 목을 매 삶을 마감한 특수고용노동자 박종태의 주검이 있습니다. 진정 살아 있는 주권자여야 할 그들은 여전히 자본과 권력에 의해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고 조롱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저편에 한 시대의 정치지도자이자 대통령이었던 노무현의 죽음이 있습니다.

차별받지 않는 주검들의 세상을 꿈꾸며 이들 모두의 명복을 진심으로 빕니다.

/이광일 성공회대 연구교수

*** 아래 링크는 원문 입니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526103009&section=01

by 곰돌이푸 | 2009/05/26 16:50 | 발언하기 - 잡스런 세상 | 트랙백

숏버스(Shortbus)와 책 읽어주는 남자(The reader)


== 숏버스 ==

이거 누가 보지 못하게 했었어?

영화등급심의위원회인가 하는 곳에서... 그랬어?

무삭제판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봤는데 (706MB, 러닝타임 1:41:36)

찌질이 불쌍한 인생들 이야기이더만.

아, 물론 성기 삽입 장면이나, 혼음 장면이나, 남자 동성애 3명이 같이 관계를 맺는 장면 등이 있기는 하지...
(극장 상영할 때, 이러이러한 내용이 있으니 알아서 볼 사람만 보라고 하면 안되나?    이런 내용 가지고 아예 상영 못하게 막아 버리면 어떻하라구 ~~~ )

그런데 이게 주요 이야기가 아니니까.. 영화가 되는 것이지.

그냥 평범한 인간으로서 그 무언가 어떤 것 한가지는 상실하고 있는 사람들의 힘겹지만 솔직한 고백들로만 보이드만.
(오르가즘을 못 느끼는 사람, 인간 관계 맺기에 힘들어 하는 사람, 관계의 권태와 실재를 의심하는 사람, 사회적 위치의 허위에 대해 어려워 하는 사람 등등 ... )

영화 끝 부분에 나오는 숏버스의 주인장이 부르는 노래 제목을 아는 사람 있으면 덧글 좀 달아 주삼. (이왕이면 파일까지 주면 더 고맙구요.  굽신굽신.)     거의 이 부분에서 앞에 나오는 사람들의 짠한 이야기가 마음 속 풀리면서 약간 울적하려고 했었다능.
 
실제로 감독이 그런 의도였는지 모르지만 911 트라우마로 해석하라는 단서는 곳곳에 깔려 있음.



== 책 읽어주는 남자 ==

그냥 쉽게 해석하면 구구절절한 첫사랑 영화이고... (여자 주인공이 미간을 찡그리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눈 빛의 애절함이란... 아, 주긴다 주겨.)

옷 갈아 입을 때 복도 쪽에서 훔쳐보는 꼬마랑 마주친 눈 빛, 자기가 일하는 전차 칸으로 바로 오지 않았다고 꼬마랑 싸울 때의 눈 빛, 재판정에서 방청객 석에 있는 꼬마를 찾는 눈 빛, 면회실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들어오다가 그냥 돌아가는 꼬마를 바라보는 눈 빛, 녹음기를 통해 테이프를 듣고 도서관에서 빌린 책에 단어를 체크해가는 눈 빛, 출소 일 주일 전에 식당에서 마주친 꼬마를 쳐다보는 눈 빛 ......

조금 거창하게 해석하면... 나치라는 대상을 중심으로 전전 세대를 전후 세대가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일 것인가의 문제인데...

"양철북"에서는 의도적으로 성장을 멈춰버리는 것으로 복수를 하는 것이라면, 책 읽어주는 남자는 적극 받아주지는 못하지만(법정에서 새로운 증거를 제시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 못한다), 해석은 하고(로스쿨의 특별 세미나에 관련된 여러 장면들 자체가 이렇다), 이해하면서 객관화하려는데 어쩔 수 없이 시간의 흐름으로 윤색은 시키게 된다.(자신의 딸을 한나의 묘지에 데려가서 옛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 그렇다.)

그냥... 영화 포스터에 있는 것처럼...

인생의 방향에 영향을 미치는 첫 사랑이란 있다 !!!
(흑흑흑 ~~~  ㅠ..ㅠ )

by 곰돌이푸 | 2009/03/26 17:36 | 혼자 끄적거리기 - 즐거움.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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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말이야 지난 25년간

한번도 사각 빤쓰에서 전향한 적이 없어

내가 얼마나 보수적인지 알겠지.

난 마누라도 바꾼 적이 없어

나만한 보수주의자 있으면 나와보라고 그래.

 

 

- 2009. 03. 10 처음 쓰다.


by 곰돌이푸 | 2009/03/12 09:57 | 혼자 끄적거리기 - 즐거움.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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